일본제 반도체가 일본 정부의 대러 제재망을 뚫고 러시아로 대량 흘러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1년여간 러시아가 해외 국가를 경유해 사들인 일본 반도체 규모는 15억엔, 한화로 141억원 규모인 것으로 추정된다.
1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입수한 인도 정보조사업체 '엑스포트 지니어스'의 통관데이터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해 2월 24일부터 지난 3월 31일까지 총 15억엔(약 141억원) 상당의 일본제 반도체를 수입했다.
이 중 홍콩과 중국 본토를 경유해 반입한 물량(819만 달러)이 전체 러시아가 밀수입한 일본 반도체의 70%에 달했다. 한국과 튀르키예를 우회해 수입한 일본제 반도체도 각각 99만달러, 5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리투아니아를 통해 유입된 일본제 반도체 규모는 41만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조사에 따르면 홍콩에 거점을 둔 한 상사는 지난해 10월 일본 키옥시아가 생산한 반도체 약 4000개를 러시아 전자부품 도매업체에 수출했다. 같은 해 3월 중국 기업은 15만달러 규모의 일본산 반도체를 러시아 상사에 밀수출했다.
앞서 일본은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보조를 맞춰 지난해 2월 반도체 수출 제한 등 대러 제재에 동참한 바 있다. 현재 일본이 러시아에 수출을 금하고 있는 품목은 반도체와 통신장비 등을 포함해 총 57개 품목이다.
이 같은 소식에 사실상 일본의 대러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이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판매되는 자국 반도체의 최종 행선지를 모두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의 지난 4월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미국도 대러 제제망을 허술하게 관리한다는 점을 이용해 규제를 뚫고 총 1조원의 미국제 반도체를 밀수입한 바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 대러 제재가 잘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복잡한 반도체 공급망을 얼마나 잘 관리하고 있는지 보면 된다"며 "반도체 유통에 대한 대응은 일본 수출 관리의 척도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대러 제재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현재 미국은 제3국의 기업도 자국의 수출 규제를 위반할 경우 제재를 가할 수 있지만, 일본은 현행법상 일본에 직접 수출하는 기업만 규제가 가능하다.
스즈키 카즈토 도쿄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니혼게이자이에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을 막을 방안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2차 제재(제 3국 기업 제재)를 통해 우회 수출을 멈출 수는 있다"면서 "러시아와의 거래가 어떤 형태로든 계속되는데도 해당 기업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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