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1~3월) 국내 은행권 가계대출의 부실률 증가 폭이 최근 10년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와 비슷한 수준이다. 가계대출 규모도 증가세로 돌아섰고, 시중금리는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이달 22일 기준 국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가계대출은 전월 말 대비 6000억원 이상 늘었는데, 3개월 연속으로 증가했다.
최근, 정부가 역전세난 대응을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일시 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가계대출 증가세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가계대출 규모, 부실률, 금리가 동반 상승하면서 완만한 디레버리징(부채 감축)과 자산건전성 확보를 유도하는 금융당국이 '삼중고(三重苦)’를 겪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국내 은행이 실행한 가계대출의 부실을 나타내는 고정이하여신(NPL) 규모가 총 2조19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4.4%, 직전 분기 대비 22.1% 증가한 수치다. 최근 10년간 집계된 은행권 가계대출 NPL 증가율 중 최대치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가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본격적인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후 가계대출 연체가 누적됐다. 2009년 1분기 은행권 가계대출의 NPL 규모는 직전 분기 대비 27.2% 증가한 2조6464억원까지 늘어났다. 같은해 2분기에는 이 규모가 2조5237억원을 기록하면서 줄었지만 전년 동기 대비로는 34.5% 급증했다.
일부 지표는 금융위기 당시보다 부정적인 전망을 암시하고 있다. 우선 2009년에는 기준금리가 전고점인 5.25%보다 낮은 2%였지만, 지금은 기준금리 인상이 멈춘 직후여서 언제 떨어질지 기약할 수가 없다. 또 금융위기 이전에 나타난 금리 상승기에는 금리가 3년에 걸쳐 서서히 상승해 차주들이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반면, 지금 현재는 비교적 짧은 기간(1년 5개월)에 금리가 큰 폭으로 올랐다. 전반적인 은행권 대출 부실이 확대될 여지가 크다는 의미다.
실제로 올해 2분기(4~6월)에도 연체율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 평균은 4월 0.27%로 전월 대비 약 0.03%포인트 상승한 뒤 5월에는 0.29%까지 올랐다. 지난달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신규 연체율도 1년 전의 두 배 수준인 0.08%로 집계됐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올해 말 은행 가계대출 NPL 규모가 전년 말 대비 83%가량 많은 3조원까지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NPL 비율은 0.18%에서 0.33%로 급등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는 가계대출 규모, 부실률, 시중금리 등을 모두 낮춰야 할 시점”이라며 “전 세계적인 고금리 기조가 길어질 것으로 전망되므로 자산건전성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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