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에서 테슬라의 전기차 충전 규격 NACS(North American Charging Standard)가 대세로 자리잡을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와 껄끄러운 관계인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테슬라 충전 방식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26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앞서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가 NACS를 적용한 테슬라의 전기차 충전시설 '슈퍼차저'를 사용하기로 한 데 이어 전기차 업체 리비안도 NACS를 채택하기로 하는 등 테슬라가 북미에 구축한 전기차 충전 인프라에 동참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테슬라 슈퍼차저는 미국 내 전체 급속충전기의 약 60%를 차지하는 터라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슈퍼차저 선택은 전기차 보급 확대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좌우하는 최대 요인 중 하나가 충전 인프라 접근성이기 때문이다.
다만 테슬라를 제외하면 현대자동차 등 상당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여전히 미국의 기존 표준 충전방식인 CCS(Combined Charging System)를 사용하고 있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최근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NACS 동참 가능성에 대해 "고객 관점에서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며 유보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가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지원 보조금을 CCS 규격 충전시설로 제한해 둔 점이 테슬라 슈퍼차저의 세력 확대 분위기에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바이든 정부는 작년 11월 발표한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 정책(NEVI)에 따라 향후 5년간 75억달러의 전기차 충전시설 구축 보조금을 편성했다. 문제는 CCS 규격을 채택한 충전시설에만 보조금이 지급되며, 슈퍼차저 시설이 보조금을 받으려면 기존 NACS에 더해 CCS 규격을 추가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해부터 미 공화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등 바이든 정부와 종종 불편한 상황을 빚어 왔다. 지난달에는 트위터로 디샌티스의 대선 출마 선언을 중계하려 했다가 기술적 문제로 초반 중계가 먹통이 돼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여전히 CCS에 무게중심을 둔 바이든 정부의 보조금 정책은 마치 테슬라 충전 인프라 확대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로 비치기도 한다.
바이든 정부 입장에서는 슈퍼차저를 지원해 머스크를 도와주는 것도 달갑지 않지만, 슈퍼차저의 점유율과 안정성 등을 감안하면 CCS 규격만 지원하다 종국에는 예산을 허공에 날리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여전히 급성장 중인 전기차 시장이 양립 불가능한 2개의 충전 표준 간 분열에 직면해 있다"며 이 같은 분열이 전기차 보급을 늦추는 결과를 낳거나, 향후 충전 표준이 NACS로 통일될 가능성을 고려하면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미국의 3대 전기차 제조업체인 테슬라와 포드, GM이 모두 테슬라의 기술에 집중함에 따라 향후 전기차는 NACS 규격으로 제작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CCS를 고수할지, 또는 민간 부문이 지향하는 방향이라면 테슬라 시스템으로 전환할지가 문제"라고 진단했다.
충전업계는 NACS가 대세로 자리잡을 가능성을 예상하고 대응하려는 분위기다. CCS 중심의 고속 충전소를 운영해 온 이비고(EVgo)는 NACS 규격 추가를 적극 검토 중이라고 폴리티코에 밝혔다. 충전장비 제조업체 블링크차징은 CCS와 NACS 커넥터를 모두 갖춘 고속충전기를 개발 중이라고 발표했다.
테슬라와 바이든 정부가 충전 인프라 정책을 놓고 묘한 관계를 이어가는 가운데 테슬라 본사 소재지이자 미국 보수의 텃밭으로 불리는 텍사스주의 행보도 눈길을 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텍사스주는 전기차 충전기 제조업체가 고속도로 전기차 충전시설을 구축할 때 지원금을 받으려면 기존 표준인 CCS에 더해 NACS 방식도 포함하도록 요구하기로 했다. 이 방침이 시행되면 텍사스주는 주정부 차원에서 NACS 사용을 의무화하는 첫 번째 사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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