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수출과 통상, 에너지, 공급망 등 산업 정책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산업부 엘리트 관료들의 이탈이 갈수록 늘고 있어서다.
만성적인 인사 적체와 민간 대비 열악한 처우 등 기존 고민에 정책적 방향성이 바뀔 때마다 문책과 형사처벌까지 감내해야 하는 부담이 더해진 결과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다른 어느 때보다 정교한 정책 설계·집행이 중요한 시점이라 4급 이상 핵심 공직자의 잇단 민간행(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산업부에서 민간으로 자리를 옮기는 공직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11일 공직윤리시스템에 게재된 퇴직 공직자 취업심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올 상반기에만 17명이 민간 기업으로 이직했다. 이런 추세라면 이탈자가 연간 30명대 중반으로 늘어날 수 있다. 지난해(30명) 대비 15% 안팎 많은 수치다.
세부적으로 보면 상반기 중 일반직 고위공무원 3명이 민간 기업으로 갔다. 이들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취업 승인 통보를 받아 엔지니어링공제조합 부이사장,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한국도시가스협회 상근부회장 등 보직을 꿰찼다. 이 밖에도 국·과장 10여 명이 정든 조직을 떠났다.
눈에 띄는 건 올 들어 매월 꾸준히 이탈자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지난 4월에 6명으로 가장 많았고 2월과 3월에도 각각 3명이 사직했다. 대부분 삼성과 현대차, SK, 한화 등 고액 연봉을 제시하는 대기업으로 향했다.
산업부 관료가 민간 기업으로 이직하는 현상은 매년 늘고 있다. 2020년에는 민간 기업으로 이직한 사례가 9명에 불과했지만 이후 2021년 29명, 2022년 30명 등으로 증가세다. 불과 3년 만에 3배 넘게 급증한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5년 전만 해도 이탈자가 이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최근 몇 년 새 민간 기업으로 옮기는 선후배들이 계속 늘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승진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거나 임금 등 처우가 민간 기업보다 열악하다는 등 이직 사유는 종전에도 많이 회자돼 왔다.
더 우려스러운 건 최근 들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인사상 불이익과 문책, 형사처벌 등이 이직을 결심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윤석열 정부 들어 전 정권 때 추진했던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전반에 걸쳐 고강도 감사에 나서면서 산업부 내 복지부동 기조가 강해지고 있다. 실제 산업부 전직 과장 2명은 문재인 정부 당시 태양광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산업부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태양광 사업에 박차를 가했는데 지금 실·국장 중에 관련 부서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산업부가 타깃이 되는 것 같아 두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지난 5월 산업부 차관이 전격 교체된 것 또한 이 같은 불안감을 고조시킨 사례다. 윤 대통령은 박일준 2차관을 경질하고 강경성 대통령실 산업정책비서관을 신임 2차관으로 임명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새 정부 핵심 국정 과제인 탈(脫)원전 정책 추진이 지지부진한 데 따른 문책성 인사라는 해석을 제기했다.
산업부 수장인 이창양 장관 교체설도 꾸준히 제기된다. 취임한 지 1년이 지난 만큼 혹여 바뀌더라도 책임 추궁형 개각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산업부 내부 분위기를 더 얼어붙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
산업부 국장급 인사는 "윤석열 정부 초대 산업부 장관으로 내부 출신이 임명돼 분위기가 좋았는데 최근 외부 인사 이야기가 나와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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