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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주제 / 화물∙특장 ] 철강 운송 노동자와 ‘과적의 악순환’
포항시 남구 대송면 철강산단로 195. 동국제강 5번 게이트 앞에서 백승식(60)씨를 만났다. 조금 지쳐 보였다. 파업은 벌써 보름을 넘기고 있었다. “인터뷰 해 봐야 아무 소용 없다”며 손을 저었다. 농성장 천막 앞에 피워 놓은 장작불만 멍하니 바라봤다. 그는 철강운송 노동자다. 이르면 9일, 늦어도 10일이면 국토교통부 장관 명의의 ‘업무개시명령서’를 받게 될 터다. 농성장 옆 왕복 6차로 철강산단로에는 H빔, 선재, 강판 롤을 실은 25톤 추레라가 육중한 엔진음을 내뿜으며 쉼 없이 오갔다.
H빔이라고 불리는 H형강 최대 길이는 25m다. 제품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개당 2톤에 육박한다. 백승식씨 25톤 추레라에 가득 실으면 최소 10개에서 13개까지 실린다. 트럭 길이에 H빔 길이를 더하면 30m에 육박한다. 중형SUV 6대를 일렬로 붙여 놓은 셈이다. 상식을 넘어서는 길이에 압도된다.
서울까지 운송료는 톤당 2만3천원쯤이다. 제품과 운송 거리, 시간 등에 따라 2만1천원에서 2만5천원 사이를 오간다. 적재량 25톤을 꽉 채우면 총운송료는 57만5천원이다. 서울까지 기름값만 30만4천원, 요소수 1만8천원에 고속도로비 3만원이 추가된다. 운송료에서 비용을 제외하면 22만3천원이 남는다.
문제는 시간이다. 백씨는 오전 8시쯤 일과를 시작한다. 차고지에서 추레라를 빼 공장에 가면 상차에만 평균 8~10시간이 걸린다. 공장은 하나인데 출하량은 많고 상차에 동원되는 크레인과 지게차가 다른 업무도 병행하니 시간이 하염없이 늘어진다. 쉬는 것도, 쉬지 않는 것도 아닌 대기 시간이다. 상차 콜이 오면 바로 이동해야 한다. 상차가 끝나면 그때 서야 차에서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다. 새벽, 포항을 출발하면 서울까지 6시간쯤 걸린다. 총 노동시간이 16시간에 달한다. 22만3천원을 16시간으로 나누면 시간당 1만3천원에 불과하다.
백씨는 “차라리 아르바이트가 낫다”고 했다. 백씨 트럭은 독일제 ‘만 TGS 480’이다. 5년 전, 1억9천800만원주고 샀다. 할부이자 까지, 하면 매월 428만원이 나간다. 특수제작 샤시(트레일러)는 6,800만원이다. “어찌어찌 대출받아” 해결한다. 대출 이자가 더 들어간다. 소모품, 수리비, 보험료를 감안하면 “차라리 아르바이트가 낫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과적으로 수입을 늘린다. 화주는 운송료를 낮추고, 운송사는 수수료를 더 받고, 운송 종사자는 수입이 늘어난다. 안전은 뒷전이 되는 ‘과적의 악순환’이다. 총중량 제한은 40톤이지만, 10% 과적은 정부도 눈을 감아준다. 44톤에 2~3톤을 더 싣는다. 톤당 운송료가 2만3천원이니 한탕에 7만원 정도가 더 들어오는 셈이다. 과적은 평시 제동거리를 최대 35% 늘린다. 멈추지 않는, 아니 멈출 수 없는 46톤짜리 쇳덩이는 오늘도 고속도로를 달린다. 단속으로는, 처벌 강화로는 결코 해결 될 수 없는 ‘시스템 리스크’다.
지연된 상차는 과로를 부른다. “새벽까지 배송해 달라”는 고객사 요구는 위험 신호다. 저녁 8시쯤 상차를 마치면 자정까지 쪽잠이라도 잘 수 있다. 서울까지 운행하면서 세번 정도는 정차해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배송 시간을 맞추려면 꼼짝없이 바로 출발해야 한다. 휴게소는 꿈도 못 꾼다. 백씨는 “그럴 때, 사고가 나는기라. 비몽사몽으로…”라고 했다. 철강 운송 노동자들이 ‘안전운임제를 확대하라’며 파업하는 이유다.
백씨의 일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벽, 포항을 출발해 오전 7시쯤 공사 현장에 H빔을 하차하고 나면, 내려갈 때 운송할 짐을 찾아야 한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는 화물은 많지 않다. 대개 평택, 인천, 당진 등에서 포항으로 운송되는 짐을 싣는다. 전신주, 파이프, 철근, 철판 가리지 않는다. 화주를 찾지 못하면 꼼짝없이 대기한다. 기름값이 있는데, 빈 차로 움직일 순 없는 일이다. ‘자유로운 시장 논리’는 화물노동자의 급한 사정을 이용한다. 운송료는 60%대로 떨어진다. 잘 받아야 35만원 수준. 백씨는 “물건 주는 사람들도 아는 거지. 그러니까 깎지”라고 했다.
최근에는 화물 포장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 칼바람 부는 날 밤, 가로 3.4미터, 세로 14미터짜리 철판에 비닐을 덮고 ‘갑빠’(천막)를 혼자 씌우다 보면 ‘왜 이일을 시작했나’ 자괴감이 든다. 8일 정부가 발표한 ‘철강 운수 종사자’는 전국에 6천여명이었다. 전국에 제2, 제3의 백승호씨가 6천여명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들에게 “국민경제 부담과 혼란을 초래하는 불법집단 행위자”라는 딱지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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